[2004-12-23]내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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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덕성 작성일05-08-23 15:07 조회4,491회 댓글0건본문
어느 할머님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할머니! 교회엘 나가십니까?
“그럼 나가고 말구”
“그러면 할머니 누구를 믿으십니까?”
“누굴 믿다니?
할머님은 한참 생각을 하시다가
“우리 며느리의 하나님을 믿어요.”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어느 목사님이 예화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그 할머니께서는 며느리가 교회에 나가자고 하니까 그저 할머님은 며느리의 권유로 나오는 셈이다. 지금도 이러한 신자가 교회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교회에 나오면서 왜 나오는지 또 누구를 믿는지 무관심 상태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본다. 그저 막연히 하나님과 예수님만 알 고 있을 뿐 신앙적인 면이 없는 사람이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난주일 노인하교 여러분에게 “내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다. 왜냐하면 노인학교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 매 주일마다 성전에 나와 예배드린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나간다. 그런데 아직도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이일처럼 황당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솔직히 그 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 만약 밑이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다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물은 새 나가 없지요” 라고 대답해 주셨다.
나는 노인학교 여러분에게 교회가 그 동안 여러분에게 많은 투자를 했지요. 그런데 그 투자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동참하기를 소원하면서 이루어졌는데 전부는 아니어도 반이라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는데 불과 몇 사람이라면 투자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볼 수 없지 않느냐 그러니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교회를 도와 줄 때라고 말씀을 드렸다.
나는 그 분들에게 “내 믿음”을 가지라고 부탁하였다. 이왕이면 오늘 이 아침에 일찍 나오는 목적도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경배들이기 위해서 나왔다고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하였다. 그 동안 노인하교 여러분이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믿음”을 찾아 남에게 의지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유다서 1장 20절에“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라고 말씀하셨다. 즉 사랑하는 자들에게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하신다. 삶은 어디에 기초를 두고 어떻게 건축 되었느냐에 따라서 인격이 달라진다고 본다. 완전한 인격을 조성하려면 믿음 위에 자가를 건축하여야 완전한 인격이 형성이 된다. 이렇게 우리 믿는 자들은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는 것이 성도요 예수님의 제자로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기를 건축한다는 것은 세워진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예수님이 마을에 들어가시자 문둥병자 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큰 소리로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가는 도중에 몸이 깨끗하게 되었다. 그들 중 하나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는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이때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고 말씀 하셨다.
열 사람의 문등병자 중 단 한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만이 나음을 보고 예수님께로 돌아 왔다. 그러니까 이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의 고마움을 느꼈다고 본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열 사람이 다 깨끗하게 되지 않았느냐 ?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느냐 ?”고 서운 한 듯 말씀하셨다. 결국 열사람 중 한 사람만이 “내 믿음”을 완전하게 찾았다. 유일하게 자기의 믿음으로 구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얼마나 큰 선물이며 이 얼마나 큰 축복이랴.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믿음을 소유한 진실한 사람인 사마리아 인에게 크고 큰 상을 주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베드로를 보자. 베드로는 어부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다. 베드로는 고기잡이로서는 제 일인자다. 베드로가 주님이 오셨을 때에 생각을 버리고, 뜻을 버리고, 주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다. 이유 없이 무조건 예수님에게 그물을 맡기고, 바다를 맡기고, 절대자이신 주님 앞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 베드로의 그물은 갈릴리 바다의 고기로 가득 채우고도 남음이 있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살고, 믿음의 말을 하고 또 하나님께 믿음으로 모든 것을 맡기고 갈 때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 잘 믿으면 사는 날까지 하나님이 지켜주실 줄 확신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말할 것 없이 “내 믿음”을 가져야한다. 그렇게 될 때 당당하고 활기차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자고 호소하고 싶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 2:17>
“할머니! 교회엘 나가십니까?
“그럼 나가고 말구”
“그러면 할머니 누구를 믿으십니까?”
“누굴 믿다니?
할머님은 한참 생각을 하시다가
“우리 며느리의 하나님을 믿어요.”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어느 목사님이 예화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그 할머니께서는 며느리가 교회에 나가자고 하니까 그저 할머님은 며느리의 권유로 나오는 셈이다. 지금도 이러한 신자가 교회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교회에 나오면서 왜 나오는지 또 누구를 믿는지 무관심 상태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본다. 그저 막연히 하나님과 예수님만 알 고 있을 뿐 신앙적인 면이 없는 사람이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난주일 노인하교 여러분에게 “내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다. 왜냐하면 노인학교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 매 주일마다 성전에 나와 예배드린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나간다. 그런데 아직도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이일처럼 황당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솔직히 그 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 만약 밑이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다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물은 새 나가 없지요” 라고 대답해 주셨다.
나는 노인학교 여러분에게 교회가 그 동안 여러분에게 많은 투자를 했지요. 그런데 그 투자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동참하기를 소원하면서 이루어졌는데 전부는 아니어도 반이라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는데 불과 몇 사람이라면 투자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볼 수 없지 않느냐 그러니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교회를 도와 줄 때라고 말씀을 드렸다.
나는 그 분들에게 “내 믿음”을 가지라고 부탁하였다. 이왕이면 오늘 이 아침에 일찍 나오는 목적도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경배들이기 위해서 나왔다고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하였다. 그 동안 노인하교 여러분이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믿음”을 찾아 남에게 의지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유다서 1장 20절에“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라고 말씀하셨다. 즉 사랑하는 자들에게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하신다. 삶은 어디에 기초를 두고 어떻게 건축 되었느냐에 따라서 인격이 달라진다고 본다. 완전한 인격을 조성하려면 믿음 위에 자가를 건축하여야 완전한 인격이 형성이 된다. 이렇게 우리 믿는 자들은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는 것이 성도요 예수님의 제자로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기를 건축한다는 것은 세워진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예수님이 마을에 들어가시자 문둥병자 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큰 소리로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가는 도중에 몸이 깨끗하게 되었다. 그들 중 하나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는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이때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고 말씀 하셨다.
열 사람의 문등병자 중 단 한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만이 나음을 보고 예수님께로 돌아 왔다. 그러니까 이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의 고마움을 느꼈다고 본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열 사람이 다 깨끗하게 되지 않았느냐 ?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느냐 ?”고 서운 한 듯 말씀하셨다. 결국 열사람 중 한 사람만이 “내 믿음”을 완전하게 찾았다. 유일하게 자기의 믿음으로 구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얼마나 큰 선물이며 이 얼마나 큰 축복이랴.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믿음을 소유한 진실한 사람인 사마리아 인에게 크고 큰 상을 주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베드로를 보자. 베드로는 어부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다. 베드로는 고기잡이로서는 제 일인자다. 베드로가 주님이 오셨을 때에 생각을 버리고, 뜻을 버리고, 주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다. 이유 없이 무조건 예수님에게 그물을 맡기고, 바다를 맡기고, 절대자이신 주님 앞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 베드로의 그물은 갈릴리 바다의 고기로 가득 채우고도 남음이 있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살고, 믿음의 말을 하고 또 하나님께 믿음으로 모든 것을 맡기고 갈 때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 잘 믿으면 사는 날까지 하나님이 지켜주실 줄 확신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말할 것 없이 “내 믿음”을 가져야한다. 그렇게 될 때 당당하고 활기차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온전한 믿음을 가지자고 호소하고 싶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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