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축제 ---피츠버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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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12-17 02:36 조회4,707회 댓글0건본문
하늘나라축제
"소현 자매님, 바자회 때 공연할 거니까 연습날 와요. 토요찬양팀이 빠지면 안되죠?" 유주희 전도사님의 말씀이었다. 4월말, 밀린 학교일로 눈코뜰새가 없고 거기다 공부에 집중이 안될 만큼 일이 많아힘든데, 바자회 때 공연까지 한다니....맘으로는 홍길동처럼 머리털이라도 뽑아 다른 분신을 만들어 이일 저일 시키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바베큐굽는 옆에서 공연을 한다니 교회가 무슨 장터공연장인가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에게 있어 정말 힘든 일 중의 하나는... 학교 선배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이다.
어슬렁어슬렁 연습날 와보니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찬양팀원 몇몇이 있고, 대학부 학생 몇하고, 청년회 기혼자들이 대부분이다. 청년회 싱글은 한 명도 없었다. "역시 제일 만만한게 나 인가봐...." 불평이 섞인 마음이었다. "빨리 곡이자 몇 번 부르고 가야지."
그런데, 간절한 성령님의 임재를 부르는 기도로 시작된 그 자리는 내가 생각했던 '연습' 이라는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찬양과 기도가 합하여진 온전한 찬양예배가 드려지고 있었다. 그렇게, 연습이 끝난 후 나는 다시 내 자기로 되돌아가 바자회 공연을 며칠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바자회 날, 아침 9시까지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악! 눈을 떠보니 9시반. 얼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노래 가사도 다 모르고, 율동도 모르는데, 내가 이렇게 늦게 가서 망신만 당하느니 차라리 가지말까 하는 맘이 들였다. 아니지,선한 동기로 시작된 우리의 공연에 참여하는 것도 어떤 가치가 있겠지.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면 바자회가 더 성황할꺼야. 이런 세상적인 생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늦게 일어난 내 마음의 한켠엔 찬양을 방해하는 큰 시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고, 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 시험의 패배자였다.
저만큼, 교회가 가까워 오는데 박수 소리가 힘차게 들려온다. 박수 소리가 마치 내 심장의 고동소리 같았다. 교회 계단에 정열하고 찬양을 막 시작한 공연팀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내 눈가가 시큰해져온다. 저토록 아름다운 찬양팀. 찬양팀의 찬양을 들으며 한동안 큰 나무 옆에 살짝 숨어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용서하시옵소서..."
나의 모든 부끄러움은 내갸 찬양팀으로 뛰어들어가서 찬양을 드리는 그 순간 상쇄되고 있었다. 성령님의 은혜였다. 나 하나가 하나님을 송축하는 악기의 한 부분으로 변하고 있었다. 내 안에 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 또, 그분의 나라 안에 거하는 자의 기쁨.
"아'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러한 찬양의 기쁨이 내 육과 혼과 영을 가득 채우고, 죽음조차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희락이 느껴졌다. 죽는 그 순간까지 이렇게 찬양을 드려야겠다.
그날의 찬양은 내 인생에 있어서 나를 변회시킨 또 하나의 큰 은혜의 경험이었다. 나는 그날을 회상하며 또 다시 주님을 묵상한다. 우리의 찬양은 walnut street를 지나다가 멀끔히 우리를 바라보는 군중의 것도 아니었고, 고기를 굽고 계신 장로님들의 수고를 위한 것도 아니었으며, 연신 미소를 짓고 계신 목사님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양자된 우리의 하늘을 향한 외침이었고, 사랑의 고백이었고,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경배함이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됨을 이루는 것을 경험하였다. 우리가 세상의 조건이나 나이나 처한 상황에 개의치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푯대를 바라보면서 그 푯대를 향하여 어깨를 부여잡고 행군하였기 때문이다.
찬양은 우리의 기분을 흥얼거리는 노래가 절대 아니다. 예배를 준비하는 전초전도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우리 인생의 목적이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시편 43:21)
우리의 공연을 받으시는 위대하신 단 한 분의 관객이신 하나님. 그 분만을 송축합니다.
"소현 자매님, 바자회 때 공연할 거니까 연습날 와요. 토요찬양팀이 빠지면 안되죠?" 유주희 전도사님의 말씀이었다. 4월말, 밀린 학교일로 눈코뜰새가 없고 거기다 공부에 집중이 안될 만큼 일이 많아힘든데, 바자회 때 공연까지 한다니....맘으로는 홍길동처럼 머리털이라도 뽑아 다른 분신을 만들어 이일 저일 시키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바베큐굽는 옆에서 공연을 한다니 교회가 무슨 장터공연장인가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에게 있어 정말 힘든 일 중의 하나는... 학교 선배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이다.
어슬렁어슬렁 연습날 와보니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찬양팀원 몇몇이 있고, 대학부 학생 몇하고, 청년회 기혼자들이 대부분이다. 청년회 싱글은 한 명도 없었다. "역시 제일 만만한게 나 인가봐...." 불평이 섞인 마음이었다. "빨리 곡이자 몇 번 부르고 가야지."
그런데, 간절한 성령님의 임재를 부르는 기도로 시작된 그 자리는 내가 생각했던 '연습' 이라는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찬양과 기도가 합하여진 온전한 찬양예배가 드려지고 있었다. 그렇게, 연습이 끝난 후 나는 다시 내 자기로 되돌아가 바자회 공연을 며칠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바자회 날, 아침 9시까지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악! 눈을 떠보니 9시반. 얼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노래 가사도 다 모르고, 율동도 모르는데, 내가 이렇게 늦게 가서 망신만 당하느니 차라리 가지말까 하는 맘이 들였다. 아니지,선한 동기로 시작된 우리의 공연에 참여하는 것도 어떤 가치가 있겠지.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면 바자회가 더 성황할꺼야. 이런 세상적인 생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늦게 일어난 내 마음의 한켠엔 찬양을 방해하는 큰 시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고, 나는 그 순간까지도 그 시험의 패배자였다.
저만큼, 교회가 가까워 오는데 박수 소리가 힘차게 들려온다. 박수 소리가 마치 내 심장의 고동소리 같았다. 교회 계단에 정열하고 찬양을 막 시작한 공연팀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내 눈가가 시큰해져온다. 저토록 아름다운 찬양팀. 찬양팀의 찬양을 들으며 한동안 큰 나무 옆에 살짝 숨어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용서하시옵소서..."
나의 모든 부끄러움은 내갸 찬양팀으로 뛰어들어가서 찬양을 드리는 그 순간 상쇄되고 있었다. 성령님의 은혜였다. 나 하나가 하나님을 송축하는 악기의 한 부분으로 변하고 있었다. 내 안에 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 또, 그분의 나라 안에 거하는 자의 기쁨.
"아'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러한 찬양의 기쁨이 내 육과 혼과 영을 가득 채우고, 죽음조차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희락이 느껴졌다. 죽는 그 순간까지 이렇게 찬양을 드려야겠다.
그날의 찬양은 내 인생에 있어서 나를 변회시킨 또 하나의 큰 은혜의 경험이었다. 나는 그날을 회상하며 또 다시 주님을 묵상한다. 우리의 찬양은 walnut street를 지나다가 멀끔히 우리를 바라보는 군중의 것도 아니었고, 고기를 굽고 계신 장로님들의 수고를 위한 것도 아니었으며, 연신 미소를 짓고 계신 목사님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양자된 우리의 하늘을 향한 외침이었고, 사랑의 고백이었고,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경배함이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됨을 이루는 것을 경험하였다. 우리가 세상의 조건이나 나이나 처한 상황에 개의치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푯대를 바라보면서 그 푯대를 향하여 어깨를 부여잡고 행군하였기 때문이다.
찬양은 우리의 기분을 흥얼거리는 노래가 절대 아니다. 예배를 준비하는 전초전도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우리 인생의 목적이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시편 43:21)
우리의 공연을 받으시는 위대하신 단 한 분의 관객이신 하나님. 그 분만을 송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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