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14]네 번째가 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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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덕성 작성일05-08-23 14:56 조회4,312회 댓글0건본문
제 목: 네 번째가 주는 의미
글쓴이: 김덕성
교회는 그 동안 미얀마에 잇다제일교회 건축이 완공되어 2003년 12월 8일 헌당예배에 참석할 선교 여행단 일행(예용범목사. 김만근 장로. 최봉진 강도사. 한윤호 선교사)이 헌당 예배를 드리고 무사히 귀국하여 교회 앞에 선교보고를 드린 바 있다. 이것으로 교회로서는 네 번째 해외에 교회당을 건축하고 헌당 예배를 드리게 된 셈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큰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교회가 해외 선교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물론 그 이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첫 번째 헌당예배를 드린 필리핀 오라니제일교회가 아닌가 한다. 그 때 그러니까 1998년 10월 25일이었다. 당회에서 필리핀 오라니에 제일교회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 당회는 우선 대지를 구입하는 일을 현지 선교사로 수고하시는 권영구 선교사에게 일임하여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제일교회의 해외선교의 시작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본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99년 3월 22일 예용범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참석하여 필리핀 오라니제일교회 헌당예배를 드렸으니 이 일이야 말로 우리 교회의 큰 역사가 아닌가 한다. 결국 해외에 선교사를 보내어 선교하는 것 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직접 현지에 교회당을 지어 제일교회당을 헌당하는 것이 중요성을 느껴 해외에 예배당 짓기 위한 해외선교는 加速되었다고 본다.
이어 임종혁 선교사님의 수고로 2000년 8월 29일 인도네시아에 두 번째 교회인 근데르제일교회가 헌당예배를 드린바 있다. 그리고 셋째로 세워진 교회는 장병조선교사가 활동하고 있는 태국 붕깐제일교회로 지난 2001년 12월 4일 헌당예배를 예용범 목사님과 열두 명의 장로 권사 집사님들과 그 교회 성도, 지역 인사들과 이웃 교회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들인 바 있다.
이어서 교회가 네 번째 선교지로 정한 나라는 미얀마이다. 사실 "미얀마"라는 나라 이름은 처음 들으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 외에는 대부분 생소한 느낌을 받는다. 설령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미얀마"보다는 옛 국명인 "버마"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우리에게는 1988년의 "버마 아웅산 폭탄테러사건"으로 기억되는 이 나라는 1989년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 "로 개칭되었다.
정치적으로는 1988년 군부쿠데타로 인하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19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야당 민주 국민연맹이 압승하였음에도 군사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아직까지 야당의 아웅산 수지 여사를 탄압하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나는 미얀마에 대하여 자세히 알기 위해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위치로는 남위 10도 - 북위 22도, 동경 92도 - 101도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대륙부 동남아의 서쪽 끝에 있는 미얀마는 전체 형태가 꼬리 달린 가오리 모양으로 면적은 약 68만Km로 대륙부 동남아 국가들 중 가장 크며 한반도 전체의 3배 정도가 된다. 인구는 45.600명으로 남한 인구와 비슷한 편으로 인구가 면적에 비해 적다. 수도는 양곤으로 인구는 약 5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불교 등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버마족(69%), 샨족(5%), 꺼인족(7%), 랴카인족(4%), 중국인(3%), 몬족(2%) 그리고 인도인(2%) 등 135 종족으로 형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김만근 장로님의 선교보고에 의하면 미얀마 잇다 시(市)는 수도인 양곤 북쪽에 있는 제2의 도시인 만다레이에서 80킬로 지점에 있는 인구가 17만 5천 명 정도 살고 있는 도시라고 한다. 일행은 잇다제일교회에 가기 위해 수도인 양곤에서 북쪽에 있는 제2의 도시인 만다레이까지 경비행기로 2시간, 거기서 80킬로 떨어져 있는 잇다 시(市)까지 승용차로 2시간이 걸려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 날 일행은 만다레이에서 있다 시(市)까지 승용차로 가는 데 고생한 것을 말로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도로는 비포장도로로 우리나라의 지난 50년대 수복 당시와 같았고 거기에 승용차는 낡아 에어컨도 없어 결극 창문을 열고 가는데 한 시간 쯤 가서 손수건으로 닦으니까 먼지와 땀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상태라 했다.
잇다제일교회당은 현지 담당 선교사인 황규만 선교사께서 짧은 기간에 우기(雨期)로 어려울 떠인데 우기 사이사이에 교회당을 아담하고 지어 있었고 2003년 12월 9일 오전 11시 30분부터 13시까지 선교 여행단 일행이 참석한 가운데 벅찬 감격 속에 네 번째 해외 교회당인 잇다제일교회당 헌당예배를 드렸다고 했다. 헌당예배에 참석한 성도가 팔십 여명이었고 교단에서 7.8명가량 참석한 것으로 보아 잇다제일교회는 앞으로 부흥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보였다. 예배는 원래는 예용범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기로 되어 있으나 외국인이 집회를 하면 추방 대상이 되므로 현지 사람이 설교를 하고 목사님이 인사의 말씀이 있었고 김만근 장로님은 하모니카 독주를 하여 더욱 빛나게 하였으며 결국 세계적으로 하모니카 독주를 한 셈이 되었다고 했다.
네 번째 미얀마 잇다제일교회가 주는 의미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축복이라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동안 하나 둘 해외에 교회를 세웠고 셋을 지나 넷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푸짐하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해외선교가 제법 이루어 나가 열매를 거두고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네 곳에다 교회당을 지어 헌당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의 지상 명령을 이행을 하였다고 생각하니 교만일는지 모르나 갑작이 가슴이 펴지고 우숙해진다. 여기에서 우리 교회가 이런 큰일을 하게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여기에 선교부장 김만근 장로님의 수고가 컸음을 명기해 두며 앞으로 더 많은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드린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8절
글쓴이: 김덕성
교회는 그 동안 미얀마에 잇다제일교회 건축이 완공되어 2003년 12월 8일 헌당예배에 참석할 선교 여행단 일행(예용범목사. 김만근 장로. 최봉진 강도사. 한윤호 선교사)이 헌당 예배를 드리고 무사히 귀국하여 교회 앞에 선교보고를 드린 바 있다. 이것으로 교회로서는 네 번째 해외에 교회당을 건축하고 헌당 예배를 드리게 된 셈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큰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교회가 해외 선교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물론 그 이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첫 번째 헌당예배를 드린 필리핀 오라니제일교회가 아닌가 한다. 그 때 그러니까 1998년 10월 25일이었다. 당회에서 필리핀 오라니에 제일교회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 당회는 우선 대지를 구입하는 일을 현지 선교사로 수고하시는 권영구 선교사에게 일임하여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제일교회의 해외선교의 시작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본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99년 3월 22일 예용범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참석하여 필리핀 오라니제일교회 헌당예배를 드렸으니 이 일이야 말로 우리 교회의 큰 역사가 아닌가 한다. 결국 해외에 선교사를 보내어 선교하는 것 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직접 현지에 교회당을 지어 제일교회당을 헌당하는 것이 중요성을 느껴 해외에 예배당 짓기 위한 해외선교는 加速되었다고 본다.
이어 임종혁 선교사님의 수고로 2000년 8월 29일 인도네시아에 두 번째 교회인 근데르제일교회가 헌당예배를 드린바 있다. 그리고 셋째로 세워진 교회는 장병조선교사가 활동하고 있는 태국 붕깐제일교회로 지난 2001년 12월 4일 헌당예배를 예용범 목사님과 열두 명의 장로 권사 집사님들과 그 교회 성도, 지역 인사들과 이웃 교회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들인 바 있다.
이어서 교회가 네 번째 선교지로 정한 나라는 미얀마이다. 사실 "미얀마"라는 나라 이름은 처음 들으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 외에는 대부분 생소한 느낌을 받는다. 설령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미얀마"보다는 옛 국명인 "버마"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우리에게는 1988년의 "버마 아웅산 폭탄테러사건"으로 기억되는 이 나라는 1989년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 "로 개칭되었다.
정치적으로는 1988년 군부쿠데타로 인하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19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야당 민주 국민연맹이 압승하였음에도 군사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아직까지 야당의 아웅산 수지 여사를 탄압하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나는 미얀마에 대하여 자세히 알기 위해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위치로는 남위 10도 - 북위 22도, 동경 92도 - 101도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대륙부 동남아의 서쪽 끝에 있는 미얀마는 전체 형태가 꼬리 달린 가오리 모양으로 면적은 약 68만Km로 대륙부 동남아 국가들 중 가장 크며 한반도 전체의 3배 정도가 된다. 인구는 45.600명으로 남한 인구와 비슷한 편으로 인구가 면적에 비해 적다. 수도는 양곤으로 인구는 약 5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불교 등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버마족(69%), 샨족(5%), 꺼인족(7%), 랴카인족(4%), 중국인(3%), 몬족(2%) 그리고 인도인(2%) 등 135 종족으로 형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김만근 장로님의 선교보고에 의하면 미얀마 잇다 시(市)는 수도인 양곤 북쪽에 있는 제2의 도시인 만다레이에서 80킬로 지점에 있는 인구가 17만 5천 명 정도 살고 있는 도시라고 한다. 일행은 잇다제일교회에 가기 위해 수도인 양곤에서 북쪽에 있는 제2의 도시인 만다레이까지 경비행기로 2시간, 거기서 80킬로 떨어져 있는 잇다 시(市)까지 승용차로 2시간이 걸려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 날 일행은 만다레이에서 있다 시(市)까지 승용차로 가는 데 고생한 것을 말로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도로는 비포장도로로 우리나라의 지난 50년대 수복 당시와 같았고 거기에 승용차는 낡아 에어컨도 없어 결극 창문을 열고 가는데 한 시간 쯤 가서 손수건으로 닦으니까 먼지와 땀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상태라 했다.
잇다제일교회당은 현지 담당 선교사인 황규만 선교사께서 짧은 기간에 우기(雨期)로 어려울 떠인데 우기 사이사이에 교회당을 아담하고 지어 있었고 2003년 12월 9일 오전 11시 30분부터 13시까지 선교 여행단 일행이 참석한 가운데 벅찬 감격 속에 네 번째 해외 교회당인 잇다제일교회당 헌당예배를 드렸다고 했다. 헌당예배에 참석한 성도가 팔십 여명이었고 교단에서 7.8명가량 참석한 것으로 보아 잇다제일교회는 앞으로 부흥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보였다. 예배는 원래는 예용범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기로 되어 있으나 외국인이 집회를 하면 추방 대상이 되므로 현지 사람이 설교를 하고 목사님이 인사의 말씀이 있었고 김만근 장로님은 하모니카 독주를 하여 더욱 빛나게 하였으며 결국 세계적으로 하모니카 독주를 한 셈이 되었다고 했다.
네 번째 미얀마 잇다제일교회가 주는 의미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축복이라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동안 하나 둘 해외에 교회를 세웠고 셋을 지나 넷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푸짐하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해외선교가 제법 이루어 나가 열매를 거두고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네 곳에다 교회당을 지어 헌당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의 지상 명령을 이행을 하였다고 생각하니 교만일는지 모르나 갑작이 가슴이 펴지고 우숙해진다. 여기에서 우리 교회가 이런 큰일을 하게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여기에 선교부장 김만근 장로님의 수고가 컸음을 명기해 두며 앞으로 더 많은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드린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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