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22] 나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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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12-17 02:41 조회4,758회 댓글0건본문
나의 몫
제 목: 나의 몫
지은이: 김 덕 성
나는 요새 몫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대체 내 몫이 무엇일까?”
사전에서 몫이란 단어에 대하여 찾아보았다. 사전에는 몫은 명사로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① 여럿이 나누어 가지는 각 부분.
② 맡은 일이나 임무.
③ 어떤 일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나 비중.
나는 여기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몫은 두 번째 “맡은 일이나 임무”를 의미한다고 본다. 몫은 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크냐. 적으냐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각기 몫을 지니고 살게 된다. 나도 사회적으로 몫이라 하면 해당이 되는지는 몰라도 30 년 동안 정년이 될 때까지 교사로 관리직으로 몫을 다하였다.
사실 나는 결국 반평생 교직에 몸을 담고 충실하였다. 교직이 내 몫인데....., 아이들을 가리키는 것이 내 사회적인 몫인데....., 하며 조금도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가르쳤고 학생들을 위해서 노심초사하였다고 자신한다. 오직 학생으로 하여금 “알차고 보람 있는 삶”을 위해서 헌신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지금 사회적인 몫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무슨 몫이냐?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몫이다. 이 몫은 청국 백성이면 누구나 부여 받은 사명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몫을 생각하면서 찬송가 365장 “내 주의 지신 십자가”를 애창하게 되었다. 그 원인은 2절에 보면 몫이란 단어가 있어 서 그렇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찬송가에서 말하여 주는 듯이 우리에게는 진정 십자가가 우리 누구나의 몫이다. 이 십자가의 몫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성도가 될 수 없으리만큼 중요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이것이 커다란 우리의 몫인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가가 우리들에게 주신 몫이면 그 몫은 무엇을 의미할까? 즉 맡은 일이나 임무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달란트 바유가 생각이 난다. 마태복음 25장에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받은 일을 충실히 일을 하라는 본보기로 말씀을 남기셨다고 본다. 그러면 마태복음 25장으로 가보자.
✝ ✝ ✝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먼 길을 떠났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돈을 장사하여 각각 곱을 더 벌었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겨 두었다.
오랜 뒤에, 그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님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으며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그때 주인은 그 두 사람에게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나아와서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다가 그대로 그 돈을 가지고 왔으니, 받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느냐?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아라. 하시며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었다.
✝ ✝ ✝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많이 받은 교회임에 틀림없다. 많은 시련 속에서도 해결해 주셨으며 하나님께서 그 동안 어려운 가운데 좋은 시기에 대지도 주셨고, 없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전을 지어 마무리까지 해 주시는 큰 은혜를 입었음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몫은 부자가 종에게 달란트를 나누어 준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나누어 주신 달란트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성도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성도에게는 두 달란트를 분매를 받았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 이익을 얻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여 곱, 아니 3배 4배의 남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몫은 전도라고 생각한다.
누가 복음 14장 23절에 가면,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그러나 잔치 시간이 되어도 큰 잔치에 나타나지 않아 주인은 자기 종을 보내서 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라고 독촉을 하였으나 어떤 이는 “내가 밭을 샀는데...”하고, 어떤 이는 “내가 소 다섯 쌍을 샀는데....”하고. 또 어떤 이는 “내가 장가를 들어서....”하고 하나같이 핑계를 대었다.
그 종이 돌아와서 그대로 주인에게 말하였더니 집주인이 노하여
“어서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자라도 이리로 데려 오너라 하였으며 나중에는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라고 종에게 명령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충격적이 말씀이고 우리들의 몫을 말해 준다고 말하고 싶다.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를 도와주었는데 인제부터는 너희가 내 집을 채워야 하지 않겠니? 하고 반문하고 계시지 않을까? 또 이것이 너희의 몫이니 힘을 다해 충성하여야 하지 않겠니? 하고 오늘 우리들에게 외치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라고..........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이제부터 온 성도가 일어나 이 말씀을 받아 드려 전도의 사명을 다 하여 교회를 곽 채워 풍성한 가운데 입당예배를 드렸으면 하는 것이 바램 이다. 우리 다 같이 합심하야 선을 이룬다고 하신 말씀처럼 합심하여 기도하고 전도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가 되자고 외람 되게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되지 말고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자기 몫에 죽도록 충성하여 칭찬 듣는 종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장 10절)
제 목: 나의 몫
지은이: 김 덕 성
나는 요새 몫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대체 내 몫이 무엇일까?”
사전에서 몫이란 단어에 대하여 찾아보았다. 사전에는 몫은 명사로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① 여럿이 나누어 가지는 각 부분.
② 맡은 일이나 임무.
③ 어떤 일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나 비중.
나는 여기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몫은 두 번째 “맡은 일이나 임무”를 의미한다고 본다. 몫은 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크냐. 적으냐에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각기 몫을 지니고 살게 된다. 나도 사회적으로 몫이라 하면 해당이 되는지는 몰라도 30 년 동안 정년이 될 때까지 교사로 관리직으로 몫을 다하였다.
사실 나는 결국 반평생 교직에 몸을 담고 충실하였다. 교직이 내 몫인데....., 아이들을 가리키는 것이 내 사회적인 몫인데....., 하며 조금도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가르쳤고 학생들을 위해서 노심초사하였다고 자신한다. 오직 학생으로 하여금 “알차고 보람 있는 삶”을 위해서 헌신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지금 사회적인 몫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무슨 몫이냐?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몫이다. 이 몫은 청국 백성이면 누구나 부여 받은 사명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몫을 생각하면서 찬송가 365장 “내 주의 지신 십자가”를 애창하게 되었다. 그 원인은 2절에 보면 몫이란 단어가 있어 서 그렇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찬송가에서 말하여 주는 듯이 우리에게는 진정 십자가가 우리 누구나의 몫이다. 이 십자가의 몫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성도가 될 수 없으리만큼 중요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이것이 커다란 우리의 몫인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가가 우리들에게 주신 몫이면 그 몫은 무엇을 의미할까? 즉 맡은 일이나 임무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달란트 바유가 생각이 난다. 마태복음 25장에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받은 일을 충실히 일을 하라는 본보기로 말씀을 남기셨다고 본다. 그러면 마태복음 25장으로 가보자.
✝ ✝ ✝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먼 길을 떠났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돈을 장사하여 각각 곱을 더 벌었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겨 두었다.
오랜 뒤에, 그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님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으며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그때 주인은 그 두 사람에게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나아와서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다가 그대로 그 돈을 가지고 왔으니, 받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느냐?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아라. 하시며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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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많이 받은 교회임에 틀림없다. 많은 시련 속에서도 해결해 주셨으며 하나님께서 그 동안 어려운 가운데 좋은 시기에 대지도 주셨고, 없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전을 지어 마무리까지 해 주시는 큰 은혜를 입었음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몫은 부자가 종에게 달란트를 나누어 준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나누어 주신 달란트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성도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성도에게는 두 달란트를 분매를 받았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 이익을 얻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여 곱, 아니 3배 4배의 남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몫은 전도라고 생각한다.
누가 복음 14장 23절에 가면,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그러나 잔치 시간이 되어도 큰 잔치에 나타나지 않아 주인은 자기 종을 보내서 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라고 독촉을 하였으나 어떤 이는 “내가 밭을 샀는데...”하고, 어떤 이는 “내가 소 다섯 쌍을 샀는데....”하고. 또 어떤 이는 “내가 장가를 들어서....”하고 하나같이 핑계를 대었다.
그 종이 돌아와서 그대로 주인에게 말하였더니 집주인이 노하여
“어서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자라도 이리로 데려 오너라 하였으며 나중에는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라고 종에게 명령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충격적이 말씀이고 우리들의 몫을 말해 준다고 말하고 싶다.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를 도와주었는데 인제부터는 너희가 내 집을 채워야 하지 않겠니? 하고 반문하고 계시지 않을까? 또 이것이 너희의 몫이니 힘을 다해 충성하여야 하지 않겠니? 하고 오늘 우리들에게 외치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라고..........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이제부터 온 성도가 일어나 이 말씀을 받아 드려 전도의 사명을 다 하여 교회를 곽 채워 풍성한 가운데 입당예배를 드렸으면 하는 것이 바램 이다. 우리 다 같이 합심하야 선을 이룬다고 하신 말씀처럼 합심하여 기도하고 전도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가 되자고 외람 되게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되지 말고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자기 몫에 죽도록 충성하여 칭찬 듣는 종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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